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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곡괭이

                                                      

                                                                                                

  1.
  “내리쳐.”
  사장이 내게 곡괭이를 건네며 나지막이, 허나 곡괭이의 무게만큼이나 묵직하게 말했다. 그래, 곡괭이였다. 어느 농가의 헛간에서 아무렇게나 주워온 듯 군데군데 흙인지 시멘트인지가 말라붙어있는 곡괭이. 반사적으로 받아든 난 잠시 멍한 머리를 추스르며 그저 손안의 그 물건을 들여다보고 서 있었다. 도대체 내가 왜 이걸로 사장의 머리를 내리쳐야 하는 걸까.

  사장의 실물을 본 것은 처음이다. 사진조차 제대로 본 기억이 없다. 사원교육용 동영상에서도 사장은 언제나 프레임 바깥에 있었다. 마치 영화 <벤허>에 등장하는 예수의 실루엣마냥 그는 탁한 목소리와 결의에 찬 손짓으로만 존재했다. 사원들은 그걸 상투적인 신비화전략 혹은 우상화전략이라 여기고 몰래 키득거렸다. 임금의 모습을 감히 그리지 못해 텅 빈 용상만을 그려 넣었던 조선시대의 궁중그림을 떠올리게 하는, 참으로 우스꽝스러운 숭배방식이 아닌가, 삼삼오오 모여 담배를 피울 때마다 빈정대기 일쑤였다.

  그러니 10분전 팀장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나를 불러내 지금 바로 사장실로 가보라고 사시나무 떨 듯 얘기했을 때, 나는 놀라기보다 차라리 짜릿한 호기심에 흥분했다. 건네받은 메모를 따라 한번도 타보지 못한 승강기를 타고, 있었는지도 알지 못했던 복잡한 복도를 거쳐 도착한 사장실. 밖에서 보기엔 여느 임원실과 다를 바 없다. 검은 문, 그리고 그 위에 달린 ‘사장실’이란 건조한 문패. 양쪽으로 열리는 문이 과도하게 크다는 느낌이었지만, 역시 허세를 즐기는 속물이라는 생각 외에 다른 감상은 없었다. 난 문 앞에서 반듯하게 허리를 세우며 넥타이를 고쳐 메고 낮은 기침으로 목을 풀었다. 안에서는 사장과 비서들의 대화인 듯 희미하게 남녀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제야 응당 진작 떠올랐어야 할 걱정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무슨 이유로 나를 호출한 걸까. 엄청난 실수를 한 걸까. 사장이 평사원을 불러낼 정도의 일이라면, 회사를 도산 위기에라도 빠지게 했단 말인가.’ 입술을 깨물며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문을 여는 순간, 하마터면 놀라 발을 헛디딜 뻔했다.

  2.
  그곳에 그가 있었다. 아니, 그와 그녀들이 있었다. 아니, 그, 그리고 그의 일부들이 있었는데... 말문이 막혀 입만 벙끗거리며 인사도 못 하고 서 있는 나를 보고 사장이 다짜고짜 말했다.
  “그래, 자넨가. 이거 받게. 그리고 이걸로 내 머리를 좀, 내리쳐 주겠나.”
  거대하게 부풀어 오른 사장의 머리 한 가운데, 아마도 입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에서 심해의 오징어 울음 같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와 동시에 그의 머리로부터 돌기처럼 튀어나온 두 명의 여인(아마도) 중 하나가 내게 곡괭이를 건넸다. 맙소사, 이게 무슨 일인가. 난 얼른 상황파악이 되지 않아 꼼짝 못하고 서 있었다. 그때 사장의 입이 다시 움직였다.
  “어느 날부턴가 이것들이 자라기 시작했어. 처음엔 왼쪽, 그리고 며칠 지나지 않아 오른쪽이 삐져나오더군. 이것들이 자라면서 점점 머리도 커지기 시작했고.”
  순간 두 명의 여인(아마도)이 살짝 치마를 들어올리며 눈인사를 했다. 결코 우아하지 않은 인사였다.
  “너무 무서워 병원에 갔더니 아무도 원인을 모르겠다는 거야. 어떤 놈은 어릴 적 어머니 태내에서 녹아 없어졌어야 할 죽은 쌍둥이 형제가 다시 자라는 게 아닌가 하고, 어떤 돌팔이는 내 잠재의식이 만들어낸 허상이 아니냐고 하던데, 자네 눈에도 이게 허상으로 보이나?”
  사장이 왼쪽 여인의 가슴을 슬쩍 꼬집었고 여인은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오, 제발. 밤마다 이들이 무슨 짓을 하고 지낼지, 갑자기 끔찍한 상상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근친상간인지 아니면 자위인지, 알 수도 없고 알기도 싫은 짓들.
  “헌데 재미있는 건 말이지. 이것들이 자라고 사람의 꼴을 갖게 되면서부터 내 두뇌활동이 놀라울 정도로 기민해졌다는 거야. 뭐랄까. 판단도 정확해지고 결정도 빨라지고, 게다가 앞을 내다보는 능력이 생겼다고나 할까. 사업에서도, 주식, 부동산 시장에서도 승승장구하게 됐지. 자네도 우리 회사의 기적 같은 고속성장에 대해선 잘 알고 있겠지?”
  난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물론, 업계에서 전무후무한 신화에 대해 늘 감탄하고 감사하며 모든 사원 일동이 사장님을 존경해오고 있습니다.”
  사장은 귀찮다는 듯 손을 내저으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렇게 오늘까지 오게 된 거야. 이것들은 내 새끼이자, 동료이자, 비서 역할을 해왔지. 그런데 문제가 생겼어.”
  말이 떨어지자마자 두 여인이 서로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3.
  두 여인은 종양의 일종이 아닐까. 난 혼자 생각했다. 누군가의 목 뒤에 자라났던 혹처럼 의학적 절제(切除)가 필요한 종양. 헌데 우물쭈물 거리다 시기를 놓쳤고, 여기까지 와 버린 게 아닐까. 문득 지구라는 행성에 인간은 종양에 불과하다던 한 생물학자의 얘기가 떠올랐다. 어느 날 뜬금없이 발생하여 무서운 속도로 증식하면서, 모든 자원을 남김없이 갉아먹고 최종적으로 행성을 파멸로 이끄는 ‘인간’이라는 종양. 손에 든 곡괭이를 돌려 잡으며 난 지구를 파헤쳐 들어가는 사람 떼거리를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다.  

  그때였다. 날카로운 비명에 정신을 차리니 두 여인이 서로의 머리채를 잡고 상대를 손톱으로 할퀴어대고 있었다. 멍하니 딴 생각을 하는 동안 어느새 싸움에 불이 붙은 것이다. 사장은 가운데서 둘을 떼어놓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난 어쩔 줄 모르고 섰다가 아무래도 사장을 도와야 할 것 같아 달려들었다. 소란스러운 몇 분간의 악다구니 끝에야 겨우 상황이 진정됐고, 모두 땀범벅이 되어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을 때, 사장이 힘겹게 입을 떼었다.  “이게 바로 내가 말한 문제야. 이 둘이 언제부턴가 서로를 못 잡아먹어 안달인 관계가 됐지 뭔가.”
  사장은 어디 소파에라도 앉고 싶어 하는 눈치로 주위를 두리번거렸지만, 두 여인이 워낙 팽팽한 긴장으로 서로를 향해 으르렁거리고 있기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엉거주춤한 자세로 비틀거렸다. 무척 지쳐 보이는 표정으로.
  “이유가 뭔지 모르겠어. 처음엔 나를 두고 질투하는 것 같아 최대한 고르게 관심을 베풀려고 노력했는데, 이젠 그마저도 상관없이 무조건, 사사건건 부딪히고 물어뜯고 있네. 갑자기 매일 매일이 지옥이 됐어. 10분의 평화 뒤에 50분의 전쟁이 매시간 반복된다고 생각해보게.”
  느닷없이 그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울음을 터뜨렸다. 물론 얼굴은 십분의 일도 가려지지 않았다. 어색한 순간을 견딜 수 없어 주머니를 뒤져 내 손수건을 꺼내 조심스레 그에게 건네려 하는 순간, 사장 오른쪽의 여인이 사납게 손수건을 낚아채 자신의 가슴팍에 쏙 집어넣어버린다. 그리곤 기분 나쁜 웃음을 입가에 흘렸다. 왼쪽의 여인도 그녀와 눈을 마주치더니 슬며시 이를 드러내며 웃는다. 사장은 울고 있고 두 여인은 빙글거리는 기괴한 장면 앞에 난 몹시 혼란스러워졌다. 그때, 사장이 얼굴을 들고 비장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이제 이 모든 걸 끝내기로 했네. 그 곡괭이로 내 머리를 내리치게.”

  4.
  사장은 팔을 들어 두 여인의 어깨를 감싸 누르며 무릎 꿇게 했다. 세 명이, 혹은 한 명과 그 부산물들이 내 앞에 무릎 꿇고 있고, 난 곡괭이를 쥔 채 서 있는 형국. 누군가 지금 사장실의 문을 연다면 뭐라고 생각할까. 곡괭이를 든 손이 덜덜 떨려왔다. 마지막으로 곡괭이를 든 게 언제였던가. 아니, 내가 한번이라도 곡괭이를 들고 무언가를 내리친 적이 있었던가. 사장은 왜 하필 하고많은 사원 중에 나를 부른 걸까. 지난 봄 야유회 때 눈 가리고 수박내리치기 놀이 하는 걸 멀리에서 지켜본 걸까. 설마. 그 남이섬 어느 구석에 이 몰골의 사장이 숨어 있었을 리가. 팔이 저려왔다. 곡괭이가 점점 더 무거워지는 듯한 기분이다. 이대로 이걸 들어 내리친단 말이지. 저 거대한 머리를 향해. 어떤 느낌일까. 물컹할까. 아님 단단한 두개골이 쩍하고 갈라질 때 곡괭이를 놓치고 말게 될까. 입 안에 침이 말랐다. 내 떨림이 사장에게도 전해졌는지 그가 바닥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걱정 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진 아무도 모르니. 머리가 터져 죽을지도 모르지만, 어쩌면 이 둘이 영영 나에게서 떨어져나가게 될지도 모르지. 나만 죽고 둘은 살지, 둘은 죽고 나는 살지, 아님, 셋이 각자의 길을 걸어가게 될지 누구도 몰라. 내 뇌를 나눠 쓰고, 내 심장에서 피를 길어가는 이것들을 이젠 떼어 버리고 싶네. 아니, 자유를 주어 보내 버리고 싶네. 어떤 길이 펼쳐져 있을지 모르지만, 지금보단 낫지 않겠나. 자, 이제 그만 뜸 들이고, 해주게.”

  사장이 침통하게 고개를 숙였고, 동시에 그의 머리에서 자라난 두 여인이 얼굴을 들어 나를 바라봤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활짝 웃는 얼굴이다. 어쩌면 이 모든 게 이들이 바라던 일이 아닐까. 속이 메슥거렸다. 두 손에 힘이 들어갔다. 어깨 근육이 수축했다. 난 곡괭이를 높이 들어 사장의 머리를 향해 힘껏 내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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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랫글에 밝혔듯
잡지 <Dazed & Confused> 7월호 Instant Novel란에 실린 이야기.
Alex Pardee의 일러스트로부터 시작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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