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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모이게 된 이유는 간단해. 그 앨범을 만들기 위해서야. 궁극의 앨범. CD가 사라지기 전에 마지막으로 음악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최고의 앨범. 더 이상의 군소리를 허용치 않는, 청중을 압도해 그들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버릴 절대 앨범. 앨범의 마성(魔性)이 너무 강해 원정대라도 구성해서 영영 화산 속에 처넣지 않으면 귀에서 떼어낼 수 없을 만큼  치명적인 앨범. 이때만 해도 나중에 여러분 모두가 알게 되어 누구나 아무데서나 흥얼거리게 된 그 노래가 만들어질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었어. 그것보다 훨씬 더 숭고하고 웅대한, 더 중차대하고 전지구적인 목표를 신주단지처럼 가슴에 소중히 안고 모였던 거야. 돌이키기도 싫은 과거, 짜증스러운 애증의 역사를 밟고 일어나, 서로를 다시는 보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맹세조차 헌신짝처럼 벗어던지고서. 두근두근하더군. 조마조마했던 걸까. 여하튼 가슴이 벅차올라 심호흡을 하려 했더니 폐를 더럽힐 작정인 듯 축축한 공기가 쏟아져 들어왔어. 난 다시 입을 닫고 얌전히 코로 숨을 쉬기로 했지. 그러면서 주위를 둘러봤어.

  네 명이 각자의 자리를 차지하고 가운데를 향해 마름모꼴로 앉아 있었어. 6년 전 밴드할 때 누군가(늘 다로였지만) “회의하자!”고 외치면 모여 앉던 딱 그 대형이야. 어쩜 이런 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이렇게 유지되는 걸까. 마치 1차 술자리를 마치고 2차를 갔더니 자연스레 똑같은 자리배치로 앉는 것처럼, 조악한 플라스틱 의자 네 개만 던져줘도 제 둥지 찾듯 자리를 찾으니 말이야. 뭐 우선 다로와 인지는 붙어 앉았어. 당연해. 둘은 그런 사이니까. 이해할 수 없지만, 납득할 수 없지만, 둘은 그런 사이니까. 내심 6년이란 시간이면 어떤 짝도 붕괴되기 마련이라는 믿음에 조심스레 희망을 품어봤지만, 며칠 전 날 찾아온 건 역시 변함없이 짝으로 다니는 둘이었어. 다로와 인지. 이들의 관계를 ‘사귄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보다 훨씬 복잡오묘한 관계지, 둘은, 뭐랄까, 지배와 복종관계도 아니고, 성적인 파트너관계도 아닌(그랬다면 애저녁에 깨지고 말았겠지), ‘공생’이라고나 할까. 그래, 서로에게서 생존에 필수적인 영양분을 빨아먹고 사는 듯한 이 기이한 공생관계의 둘은 여전히 붙어 앉아 있었어. 그리고 다로의 옆에 내가 앉았지. 역시 당연해. 기한과 다로는 견원지간이니까, 서로의 보이지 않는 방어막 정도는 유지해야지. 그렇다고 치고받고 싸우는 사이는 아니야. 그러려고 한 적이 한 번 정도 있었지만, 둘 다 인지와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며 제발 뜯어말려주길 떨리는 눈빛으로 강력히 호소한 것으로 보아 애초에 주먹다짐을 할 배짱도 의지도 없었던 것 같아. 그저 서로를 끊임없이 갈구고 견제하고 비아냥거리는 것으로 만족하는 사이야. 물론 말빨에선 언제나 기한이 밀리지만, 저 액면을 보라구. 주위사람들이 보기엔 둘이 마주보고 서 있는 것만으로 게임셋이야. 그게 키 작고 이목구비 희미한 다로를 더욱 자극하는 것 같지만.  

  누구도 먼저 입을 떼지 않고 5분 정도가 흘렀어. 기한은 내 뒤의 마셜 앰프를 괜스레 넘겨보고 있었어. 기타 앰프에 대해선 켜고 끄는 법밖에 모르는 주제에. 다로는 나를 향해 ‘네가 저 새끼 불렀냐?’는 듯 입을 삐쭉거렸어. 난 어깨를 으쓱하며 다로의 눈을 피했지. ‘그럼 쟤 없이 셋이 하려고 했냐?’는 뜻으로. 안 그래? <풋라이츠>가 셋이라니, 안 하면 안 했지 그렇겐 못 하지.

  결국 인지가 할 수 없다는 듯 헛기침을 하더니 입을 열었어. 반쯤 열린 입술 사이로 여전히 매력적인 그 목소리가 새어나왔어.

  “두 달 안에, 앨범을 완성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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