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기한이 연습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안에 있던 세 명의 입술이 탄식과 함께 움직였어. 왜 그런 거 있잖아. 야구중계 보다 보면 끝까지 공을 쫓아가던 외야수가 간발의 차로 펜스 바로 앞에 떨어지는 파울볼을 놓치곤, TV카메라가 자신을 찍고 있단 것도 잊은 채 무의식적으로 외치지. 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입 모양을 보면 알 수 있어. 굳이 입술을 읽는 청각장애인이 아니더라도 다 알 수 있다고. 아주 오래되고 정다운 우리네 입말. 누구를 공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해 혹은 이 남루한 운명에 대해 내뱉는 고요한 절규. 그 때 기한을 바라본 나머지 우리 셋의 입술이 약속이라도 한 듯 그렇게 똑같이 움직였어. 소리가 났을까. 글쎄, 어쩌면 작은 소리가 한숨처럼 흘러나와 연습실 안에 곰팡내와 섞여 퍼졌을 지도 몰라. 아주 느린 속도로 날아올라, 신경 거슬리는 간격으로 미묘히 껌벅거리는 형광등에까지 가닿았을 지도.
6년만의 만남이었는데, 어쩌면 새끼 하나도 변하지 않았을까. 아니 더 빛나고 있었어. 지독하게 잘 생긴 녀석이야. 재수 없을 정도로 완벽한 외모. 신이 결코 친절한 자선사업가가 아니라는 생생한 증거지. 그래서 불쾌해지는 거야. 그 얼굴을 목도하는 것만으로 내가 신에게 전혀 사랑받지 못한, 존재가 인식된 적조차 없는 찌꺼기라는 생각이 드니 말이야. 모욕감이 쏟아지고 의구심이 샘솟아. 하나의 인간으로서 나도 자격이 있지 않았을까. 애초부터 나는 그 가능성의 선상에서 배제되어있던 걸까. 저런 인간을 완성하다 보니 별수 없이 배출된 불량품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 걸까. 이런 생각들이 가슴을 찔러. 정말 명치끝이 시큰시큰 아프다니까. 그것도 고개를 돌렸다가 다시 녀석을 바라볼 때마다 매번 그러니, 아마 6년 전 밴드가 풍비박산 나던 순간, 나머지 우리 셋은-적어도 다로와 나 둘은-이제 더 이상 그 통증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마음이 놓여 뒤도 안 돌아보고 떠날 수 있던 걸지도 몰라. 그런 녀석이 돌아온 거야. 활짝 웃는 얼굴로 이렇게 인사를 건네며.
“이야, 오랜만이다. 이게 얼마만이야. 뽕밭이 변해서 탱자밭이 된다더니. 다들 많이도 변했다, 친구들아.”
정말, 다시 시작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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