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적의 트위터 짧은 픽션 [21] ~ [30] (2010. 3. 8 ~ 3. 15)
[21] 불면의 밤을 지새우던 그는 완벽한 꿈의 베개를 찾는 원정에 돌입했다. 부드럽되 단단하고 푹신하되 탄력 있는 베개를 찾아 온 세상을 누볐다. 여정은 날로 혹독해졌고, 녹초가 된 그는 어느 날부턴가 머리가 땅에 닿기만 하면 곯아떨어지고 있었다.
[22] 새벽에 아이가 울며 뛰어왔다. "왜?" "사람들이 장난감을 끝도 없이 나한테 주는 꿈을 꿨어." "좋은 꿈이네?" "장난감 상자가 너무 높고 커져서 내 야옹이 인형을 찾을 수가 없었단 말이야." 아이는 고양이 인형을 꼭 안고 이내 잠이 든다.
[23] 부엌의 과도와 식칼, 공구함의 망치와 스패너, 상자 묶는 노끈, 난초가 자라는 화분, 심지어 20권짜리 백과사전까지. 집안에 가득한 물건들이 하나같이 흉기로 느껴지기 시작한 순간, 그녀는 이 결혼생활에 뭔가 문제가 있단 걸 깨달았다.
[24] "그러고 보니 요즘 A양 TV에 통 안 보이네?" "소식 못 들었어?" "무슨 소식? 한달에 2~3kg씩 살 빼고 있다며 신나했었잖아?" "그게 2년이 넘었어." "벌써 그렇게 됐나? 그런데?" "지난달 완전히 소멸해버렸어."
[25] "선생님, 약속시간에 맞춰 나가는 게 너무 두려워요. 혼자서 하염없이 기다릴 것 같고, 사람들이 수군댈 것 같고, 지는 거 같고, 할 일 없다 무시당할 것 같아서요. 어쩌죠?" "전화 끊고, 일단 와서 얘기하시죠. 40분이나 늦으셨어요."
[26] 노인이 매일 주워와 집안 가득 채운 것은 플라스틱병이었다. 마당에까지 산처럼 쌓인 PET병들은 뭘 위한 것이었을까. 그가 죽던 날 사람들은 병을 엮어 거대한 배를 만들고 그를 실었다. 영원히 썩지 않을 투명한 방주를 타고 그는 바다로 떠났다.
[27] 자꾸만 축구공이 두려워지는 축구선수 M은 교묘히 공을 피하기 위해 무진 애를 썼다. 스루패스보다 한 발짝 앞서 달렸고 센터링에 스칠 듯 머리를 내밀었다. 이전보다 민첩해진 움직임 덕에 관중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으면서도 M은 늘 떨고 있었다.
[28] 소설가 W는 책을 읽어봐야 어차피 금세 잊는다는 걸 깨닫고 죽을 때까지 단 한권의 책만을 반복해서 읽기로 했다. 훗날 마침내 완전히 암기하게 된 그 책은 <배관설비의 기초-하권>이었고, W는 그로부터 받은 영감으로 스물일곱편의 장편을 써냈다.
[29] 목 놓아 외쳐도 소리는 강 저편에 닿지 않았다. 그녀는 온몸을 써 그에게 뜻을 전해야 했다. 팔을 벌리고 몸을 젖히고 다리를 높이 차며 메시지를 띄웠다. "우린 이제 끝난 것 같아." 강 건너 그는 활짝 웃으며 머리 위로 하트를 그렸다.
[30] “인생을 준비하는 자세란 말이야, 짝사랑하는 상대가 나오는 모임이 있는 날 아무 일 없을 줄 알면서도 가장 괜찮은 팬티를 챙겨 입는 것과 비슷해. 남의 눈이 중요한 게 아니야. 스스로의 자신감이 우선이라고.” 선배가 내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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