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적의 트위터 짧은 픽션 [1] ~ [10] (2010. 2. 10 ~ 2. 20)
[1] "키스를 참 잘 하네." 거칠어진 숨을 고르며 그녀가 말했다. 무슨 뜻일까? 칭찬일까? 내가 '선수'란 뜻일까? 여지껏 얼마나 많이 해봤기에 금세 평가를 내릴 수 있는 걸까? 난 당황한 걸 감추려 우선 웃었다. "고마워. 보통이지 뭘."
[2] 실수를 가장해 피카소의 그림 쪽으로 넘어지며 그녀는 생각했다. "이게 내가 불멸에 다다를 유일한 방법이야." 누구도 손 쓸 새 없이 그림엔 커다란 구멍이 뚫렸고, 그녀는 3시간 가량 조사를 받은 뒤 미술관에서 풀려났다. 간절히 영원을 꿈꾸며.
[3] 운전할 때마다 김씨는, 맞은편에서 달려오는 차가 중앙선을 넘어와 자신과 충돌하지 않을까하는 걱정을 떨칠 수가 없었다. 1차선을 타면 숨이 가빠왔다. 어느 미친 놈, 또는 주정뱅이가 웃는 얼굴로 자신의 눈을 바라보며 달려들까봐. 바로 지금처럼.
[4] "여보세요? 난데, 회사 끝나고 와 아파트 1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14층 버튼이 없어졌어. 15층에 내려서 뛰어 내려가니 13층이고, 다시 올라가니 15층이잖아. 당신은 집에 있다고? 대체 무슨 짓을 한거야? 여보세요? 여보세요?"
[5] '왜?' 땅에 쓰러져 겨우 눈을 뜬 그는 생각했다. '왜?' 10대 초반의 소년들이 돌멩이를 하나씩 들고 흔드는 것이 희미하게 보였다. '왜?' 목으로 쇠맛나는 더운 액체가 넘어갈 때 제일 큰 녀석이 다가왔다. '왜?' 그는 눈을 질끈 감았다.
[6] 쇼핑몰에 들어서자 손님이 거의 없었다. 점원들은 일제히 그녀를 향해 필사적으로 미소지었다. 돌아나가고 싶었지만 이미 늦어버렸기에, 짐짓 웃음을 띄운 채 걷기 시작했다. 무엇을 사러 왔었더라. 그녀는 맹수우리에 던져진 사슴 같이 두리번거렸다.
[7] “바퀴벌레가요” “응?” “이렇게..이렇게 이렇게 하더니 이렇게 했어요.” “응” “그러다 이렇게 이렇게 이렇게 하더니 휙 날아갔어요.” “아 그랬구나” “...” “...” “...” “뭐 먹을래?” “...” “이거?” “아니 저거” “응”
[8] 빽빽한 숲 한가운데서 엄마가 손을 놓으며 말했다. "이제 너 혼자 가는 거야." 사라지는 엄마를 보며 아이는 선 채로 바지에 오줌을 쌌다. 어둠이 다가들자 아이는 바닥에 원을 그리고 그 안에 주저앉았다. 영영 아침은 오지 않을 것만 같았다.
[9] "그 무당이 뭐?" "지미 헨드릭스를 모신다니까." "응?" "진짜, 록 음악이라곤 전혀 모르던 시골아낙이 갑자기 헨드릭스를 몸주로 모시더니 굿을 록으로 해." "허, 그래 뭐라던?" "무대에서 언제 앰프를 불살라야 운이 트이는지 알려주더라."
[10] "그 순간 맘을 접었지." 아버지가 나뭇가지로 모닥불을 뒤적이며 말했다. "미친개가 우릴 좇아오던 날, 조금 앞서 달려가던 형이 고갤 돌려 날 보더니 눈에 광채를 띠며 희미하게 미소 짓는 걸 본 순간. 절연의 순간은 뜻밖에 쉽게 찾아온단다."
================================
약 열흘전부터 트위터에 하루 한개 정도씩(은행영업일 기준^^) 쓰고 있는
아주 짧은 픽션들이에요.
140자 안에서 써야 하기 때문에 엄청난 제약이 있는데
그게 또 새로운 흥미를 유발하는 듯.
하나의 장면, 혹은 한 순간에 집중하게 되구요.
열 편 쯤 쓰다보니
어떤 부분은 일정 정도 패턴화되는 것 같은데
그런 걸 계속 풀어헤치면서
어떻게 다양하게 써나갈 수 있느냐가 관건인 듯.
뭐 거창한 목표 같은 건 사실 없고
일단 재미있으니^^ 하고 있습니다.
적닷에서 이렇게 보시는 것도 편하겠지만
트위터로 갑자기 한 편 씩 받을 때의 느낌이
더 괜찮지 않을까 싶네요. ㅎㅎ
(트위터에서 @jucklee 를 팔로우하시면 됩니다.)
나중에 시간이 되면
어떤 꼭지들은 한 페이지 정도의 분량으로
'다시 쓰기' 해볼까도 생각중입니다.
기록 겸 나눔 겸 하여
이렇게 올려요.
주말 잘 보내세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