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적의 트위터 짧은 픽션 [41] ~ [50] (2010. 3. 31 ~ 4. 16)
[41] 비유로서 존재하는 폭포는 더 이상 비유가 아니라 실재이고 싶었다. 엄청난 높이에서 어마어마한 물을 내동댕이치는 진짜 폭포. 하지만 아무도 실재하는 골짜기 따위엔 관심 없었고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비’를 맞을 때에나 문득 거대한 폭포를 꿈꿨다.
[42] “난 네가 내 음악이 별로라고 해서 상처받은 게 아니야. 만드느라 이렇게 고생한 내게 내 음악이 별로라고 했을 때 상처받을 수 있단 걸 알면서도 잔인하게 얘기하는 너의 무신경함에 상처받았을 뿐이야!” 역시, 잠자코 있어야 했다.
[43] 그녀에게 말할 기회를 주고 싶지 않았다. 입을 여는 순간 우리의 관계에 철퇴와 같은 종지부를 찍을 것 같았기 때문에. 난 내가 저지른 잘못에 대해 중언부언 떠들면서 판결의 순간을 미루었다. 급기야 그녀가 참지 못하고 소릴 질렀다. "너는 말이
[44] 140자 한계를 이용, 이별통보를 막아낸 남자는 그들이 트위터 안에 살고 있단 걸 감사히 여겼다. 고백은 간결했고 반성은 신속했다. 그녀가 긴 공격을 시도할 때마다 싸움은 중단됐다. 허나 불안이 사라지진 않았다. 뭔가 끓어 넘칠 것 같았다.
[45] "암표상이라고 아무 공연표나 막 사고파는 게 아니에요. 다 나름의 취향이 있습니다. 안 가는 공연도 많죠. 좋아하지 않는 공연의 암표를 팔다니 견딜 수가 없거든요. 웃돈을 주고서라도 볼 가치가 있다고 나부터 납득해야 남한테도 팔지 않겠어요?"
[46] "느낌표가 많으면 더 큰 소리로 들린다고? 그럴리가." "왜!!!!!!!!!! 왜!!!!!!!!!!!!! 내 말을 못 믿어!!!!!!!!!!!!!!!!!!!!!!!!!!!!!!!" "아, 그만그만, 알았어." "이 소리가 들렸어? 그럴리가."
[47] 공터에 버려진 속 빈 피아노를 치러 오는 소녀를 위해 소년은 피아노 안으로 들어가 기다렸다. 그리고 소녀가 낡아 덜그럭거리는 건반을 누를 때마다 노래를 불러주었다. 소녀가 깔깔거리자 소년도 웃음이 터졌다. 그게 둘의 최초의 합주였다.
[48] 자포자기한 악사가 길섶에 내던지고 간 기타는 슬그머니 흙을 파고 뿌리를 내렸다. 간밤에 이슬을 가득 담아두고 해가 뜨면 목을 뻗어 빛을 구했다. 기타나무가 자라나 녹슨 잎을 떨굴 즈음 바람이 불 때마다 소리가 들려왔다. 서러운 불협의 울음이.
[49] 아무 것도 없는 광장에 나무상자를 놓고 올라서면 무대다. 배우는 독백을 읊고 사람들은 지나친다. 문득 멈춰선 행인 둘. 그 곳이 바로 객석이다. 천막도 없는 극장에서 비로소 연극이 숨쉰다. 행인들이 떠나는 순간 덧없이 사라질 극장에서 힘차게.
[50] 운동이라곤 아침저녁으로 하는 칫솔질이 전부인 그가 완벽한 몸매를 갖고 있단 사실은 도리어 주위 남자들을 안도케 했다. 타고난 것, 노력으로 얻어지지 않는 것, 어쩔 수 없는 것은 거슬리지 않는다. 애써서 되는 게 아니라면 애쓰지 않아도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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