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적의 트위터 짧은 픽션 [31] ~ [40] (2010. 3. 16 ~ 3. 29)
[31] "비밀인데, 도어스 음악이 왜 좋다는 건지 알 수가 없어. 동호회 사람들한테는 말하지 마. 날 죽일지도 몰라." "실은 나도 마일스 데이비스가 뭐가 대단하단 건지 전혀 모르겠어. 우리 오늘 이 얘기는 무덤까지 가져가는 거다. 아바에 맹세해."
[32] 공항의 짐 찾는 곳에서 아무리 기다려도 C의 가방은 나오지 않았다. 마지막엔 그 가방과 닮은 가방 하나만 빙빙 돌고 있었다. C는 조용히 그걸 들고 걸음을 옮긴다. 항공사에 물었다간 이마저 못 갖게 될 테니. 무엇이 들었을까, 가슴이 뛴다.
[33] "훨씬 더 큰 종이비행기가 필요해." 15층 아파트 옥상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아버지가 말했다. 방금 던진 종이비행기가 아직 날고 있었다. 내가 스케치북을 한 장 더 찢어 건네자 그는 씨익 웃었다. 그땐 몰랐다. 그가 뭘 계획하고 있었는지.
[34] 그가 매몰차게 일어서자, 그녀는 앉은 채 찻잔을 바라보다 스푼으로 커피를 휘젓기 시작했다. 잔속의 소용돌이가 점점 거칠어졌다. "다 사라져버려." 그녀의 주문과 동시에 이 세상이 느릿느릿 잔으로 빨려 들어간다. 떠나려던 그도, 그녀도 모두.
[35] "회전문 안에 갇힌 새 얘기 들어봤어? 아무리 날아도 끝이 없으니 그 안이 무한한 세계라 믿었단 거야." "멍청하긴." "그러게 말이야." 우리 둘은 동시에 걸음을 멈췄다.
[36] "뛰지 마!" 소리에 아이는 바닥에 납작 엎드린다. 아이의 등에 흙이 쌓이고 그 위로 풀이 자란다. 넝쿨이 엉키고 들쥐가 집을 짓는다. 마음이 약해져 "이만 됐어!" 외치자 벌떡 일어선 녀석, 인사를 꾸벅 하더니 다시 내달린다. 기쁨에 달떠.
[37] "엄마, 세상에서 제일 긴 미끄럼틀 타 보고 싶어요." "아주 먼 나라에 있는데 너무 높아 계단 오르는 데만 10년이 걸린대. 끝까지 오르면 온 세상이 한눈에 보이지만 이내 떠나야 한대. 내려오는 건 단 한 시간. 그래도, 타 보고 싶니?"
[38] 상투적인 것에 의지하는 박 과장이 귀가하면 아내가 찌른다. "일이야, 나야?" 딸에게 일과를 물으면 성낸다. "아빠가 들음 알아?" 베란다에서 노랠 흥얼거리면 날아오는 "거 잠 좀 잡시다!" 그는 안도한다. 오늘도 무사히 상투적인 하루였구나.
[39] 노배우가 말했다. "스타가 된다는 건 물이 얼음이 되는 것과 같아. 본질은 같고 잠깐의 변화만 있는 거라구. 나중에 상온에 노출되어 얼음이 다시 물이 됐을 때 '아, 이 물은 예전에 얼음이었지.' 라며 누가 알아줄 것 같나? 그저 물일뿐이지."
[40] 출근길에, 걷는 법을 깜빡 잊었다. 몸의 균형이 도자기처럼 깨져 버렸다. 바닥에 쏟아져 내린 나를 한 아주머니가 발견하고는, 빗자루로 잘 쓸어 큰 비닐봉지에 담고 묻는다. “총각, 직장이 어디야?” 세상에, 살았다. 덕분에 지각을 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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