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leejuck.com
  [juckmail] 고양이
juckmail 2000_02_02


Title : 고양이



  이를테면 해가 뉘엿뉘엿 저물 무렵 동네를 얼쩡거리다 보면, 역시 아무 소일거리 없이 어슬렁거리는 고양이 한 두 마리쯤은 만나게 되기 마련이다. 방심한 채로 눈이 마주쳤다간 이런 텔레파시를 받게 된다. "녀석, 그 속셈으로 용케도 근근히 버텨왔구나." 화들짝 놀라 반격을 시도해봐도, 어느새 놈은 아무 관심 없다는 투로 유유히 사라진다. 정말 억울한 노릇이다. 왜 매번 똑같은 수법에 말려들고 마는지.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나는 고양이가 싫다. 정말 싫다. 전국고양이협회에서 대변인 고양이를 통해, '종차별(種差別)적인 발언' 이라며 항의한다면 별 수 없이 대외적으로 사과는 하겠지만, 공은 공이고 사는 사다. 화형을 시켜도 지구는 돈다. 나는 고양이가 싫다. 고양이의 모든 것이 싫다.

  '연쇄살인고양이톰의저주'란 노래에도 드러나듯, 어쩌면 세상의 모든 악(惡)은 고양이들의 저주로부터 모락모락 피워져 나오는 것일 지도 모른다. 어느 밤 건실한 가장이자 슈퍼마켓 주인인 박 삼식 씨(37세)가 곤히 잠든 사이, 고양이 한 마리가 귓가에 수리수리 주문을 흘려 넣으면, 다음날부터 박씨는 악명 높은 연쇄방화범으로 변모하게 된다, 뭐 이런 식으로 말이다.

  예고도 없이 장화 신은 고양이가 찾아와 문을 두드리며 "당신을 부자로 만들어 드리죠" 한다 해도, 난 "천만의 말씀"이라고 일언지하에 거부하고 경찰을 부를 것이다. 그 고양이가 정말 날 부자로 만들어 줄 수 있을 거라는 건 추호도 의심하지 않는다. 그도 엄연한 고양이가 아닌가. 고양이는 모든 걸 알고 있고, 모든 걸 할 수 있다. 동시에 대부분의 고양이는 모든 걸 '귀찮아하기에' 다행히도 세상이 이만큼이나마 평화로울 뿐. 하지만 만약 내가 장화 신은 고양이의 꾐에 넘어가 그를 가까이 하게 된다면, 부자가 된 지 일 주일만에 생쥐로 바뀌어 아드득아드득 씹히게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런 고양이가 아홉 개의 목숨을 갖고 있다는 건 전혀 놀라운 사실이 아니다. 원한다면 무한히 다시 태어날 수도 있을 것이라 추측되는데, 당신의 고양이가 도대체 몇십 번째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인지는 악마만이 알 것이다. 아내가 사랑하던 고양이가 죽어 어느 묘지에 묻고 집에 돌아와 보니 멀쩡하게 살아 있더라, 그 후로도 몇 번이나 죽게 되었으나 그 곳에 묻고 돌아오면 역시나 살아 있더라(조금씩 썩어 가는 모습으로),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죽자, 그 아내를 고양이를 묻던 곳에 묻고 집에 돌아오는데..... 작자를 잊은 이 이야기는 틀림없이 실화를 각색한 것일 게다. 벽 속에 시체와 함께 갇혀있던 에드가 앨런 포우의 '검은 고양이' 역시 아직도 미시시피 근교에 서슬 퍼렇게 살아 있는 것으로, 많은 급진적 반묘주의(反猫主義) 학자들에 의해 밝혀졌다.

  고양이들의 음모와 연관하여 최근 나를 가장 경악하게 했던 것은, 20세기 중반 이후 그들이 끈질기게 추구해 왔던 '대중매체를 통한 이미지 조작'이 어느덧 성공 궤도에 오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톰Tom이라는(공교롭게도 전설적인 연쇄살인고양이와 같은 이름을 갖고 있다) '착한' 고양이가 제리Jerry라는 '못된' 쥐로부터 집요하게 공격받아 파괴되어 가는 모습을 몇 십 년 동안이나 줄기차게 보아온 대부분의 인간들은, 이제 자연스레 가학적인 제리를 증오하고 고통받는 톰을 동정하게 되었다. '포식자','가해자','사악한 마녀' 등으로 굳어졌던 자신들의 이미지를 불과 반세기만에 '순수한 피해자innocent victim'로 교묘하게 역전시킨 고도의 정치적 테크닉엔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다. 사실 나는 서구 고양이들의 이러한 정치적 성과가 한국의 고양이들을 자극하지 않을까 적잖이 우려하고 있다. 한식구인 '개'(:내가 사랑하는!)가 노력하여 겨우겨우 되찾아온 요술구슬을 집 앞에서 가로채 뜨끈한 아랫목을 차지했다는 한국고양이들은 그 시절 이후 비교적 조용히 소박하게 지내왔던 셈이다. 그러나 최근의 세계적 조류로 볼 때, 이제 한국고양이들도 '아랫목' 정도에 만족하진 않을 것 같다. 두려운 조짐이다.

  글을 마무리하며, 내가 이토록 고양이들의 어두운 세계에 집착하게 된 계기를 고백하는 것이 옳은 일일 듯 싶다. 세 살쯤 되었을까. 외갓집에 놀러갔다가 무심히 한 방문을 열었다. 그런데 그곳에선 항상 나와 함께 놀던 고양이가 방금 새끼를 낳고서 핥아주고 있었던 모양이다. 순간 외마디 '키야옹' 소리와 함께 날아온 고양이는 내 얼굴을 할퀴려다 떨어져 팔을 할퀴고는 스웨터 털실에 발톱이 걸려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그 때 미친 듯이 울어대면서 나는 이런 목소리를 들었다: '네 눈을 멀게 했어야 하는 건데...' 그때 깊이 찢어진 상처는 아직도 내 오른쪽 팔꿈치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혹 이 글을 읽고 기분이 나빠져, 키우던 고양이를 밖에 내다 버리려 한다면: 절대 삼가시길... 집밖으로 버려진 고양이들이 한 곳에 집결했을 때 초래될 결과는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안 그래도 요즘 보름달이 뜨는 밤 남산에 올라보면 모의를 꾸미며 우르르 몰려다니는 고양이들 때문에 모골이 송연해지는 판국에... 모종의 변란이 곧 있을 듯 하다. 되도록 좋은 음식과 애무로 집안의 고양이들을 회유하도록. 그리고 아무 생각 없이 '고양이들'이란 오싹한 제목의 뮤지컬이나 보러 다니는 몰지각한 인간이 없기를. 일설에 의하면 그 안에 그들의 모든 암호가 담겨 있다고 한다.....






9 [juckmail] 음혈인간으로부터의 이메일    2002/05/06 9418
[juckmail] 고양이    2002/05/06 9595
7 [juckmail] 당신은 자기 전에 이를 닦습니까?    2002/05/06 13174
6 [juckmail] 퍼오기    2002/05/06 13106
5 조바심과 늑장 : 가정불화에 대한 시간심리학적 고찰    2002/05/06 10010
4 02/05/02 20:00 <오페라의 유령>    2002/05/02 10509
3 마사루의 일기, 7월 28일 월요일 맑음 (일명: 붉은 두건 소녀)    2002/05/02 10128
2 프랑스 민담, <늑대와 소녀 (일명: 빨강 모자 소녀)>    2002/04/30 10470
1 카프카, <이웃 마을>    2002/04/30 15490
  
   [1].. 31
Copyright 1999-2020 Zeroboard / skin by AMI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