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ckmail 2000_01_26
Title : 당신은 자기 전에 이를 닦습니까?
꼭 물어보고 싶었어요, 당신은 자기 전에 이를 닦습니까?
정말 설문조사라도 하고 싶은 주제예요. "당신은 자기 전에 이를 닦습니까?" 이런 질문을 보건복지부 산하 야간치아위생관리특별위원회(이런 게 있을 리가 없지만) 따위에서 당신에게 던진다면, 일순 긴장하며, "으음...물론이죠," 서둘러 자리를 피하겠지만. 자, 자, 우리끼리 얘기니까 말이죠, 정직하게 대답해 주시지요. "당신은 자기 전에 이를 꼭 닦습니까?"
전 스무 살이 한참 넘을 때까지, 자기 전에 '절대로' 이를 닦지 않았거든요. (음, 갑자기 모니터에서 거리를 두고 앉을 것까지는 없잖아요, 당신...) 뭐 특별한 철학이나 '치아관'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니고. 그냥 '귀찮았지요'.
밤잠이 많은 저로서는 소파나 방바닥에서 비실비실 딴 짓을 하다가 쥐도 새도 모르게 잠들어버리는 경우가 많아서 어쩔 수 없기도 했지만, 때로 맨정신에 '아, 이제 슬슬 자볼까나'하고 자리에 누울 때도, 언제나 고민하곤 했죠. '이를 닦아, 말아?'
자기 전에 이를 닦기 싫었던 이유를 굳이 유추해보자면 대충 다음과 같을 듯 :
1. 졸음이 평화롭게 야금야금 찾아오는데 그걸 뿌리치고 벌떡 일어나 화장실까지 가기가 싫다.
2. 역시 졸음이 평화롭게 야금야금 몸을 덮는데 갑자기 찬물에 싸아한 치약향기로 화들짝 잠을 달아나게 하고 싶지 않다.
3. 입안에 저녁식사의 여운이 아스라이 남아 있는 느낌이 좋다. 씻어내고 싶지 않다.
4. 그래, 난 더러운 놈이다.
아아, 또 흥분했군요. 어쨌든 저의 굳건한 의지에 기반한 '자기 전에 이 닦지 않기'는 생각보다 거센 저항을 받게 됩니다. 가족들은 소리 없이 저를 멀리하기 시작했고, 특히나 아침에 얼굴을 맞대고 대화하길 거부하게 되었지요. 초자아의 심층부로부터 울려 퍼지는 당위의 목소리: "얘야, 이를 닦거라아" 라는 메시지 역시 저를 채찍질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거울을 볼 때마다 숨길 수 없이 드러나는 황금빛 이빨들...
결국 어느 순간부턴가 저는 야심한 시각 무거운 몸을 일으켜 이를 닦는 제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대견스럽더군요. 동시에 왠지모를 굴복감 같은 것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 어린 시절 세뇌받았던 '3-3-3 운동(하루 세 번, 식후 3분 내, 3분 동안 이를 닦자!)'의 망령에 결국 한 쪽 무릎을 꿇고 말았다는....
그래서 당신에게 묻고 싶었다구요. 당신도 저처럼 자기 전에 이 닦는 게 싫었던가요? 아니면 지금 이 글을 읽으며 '비위생의 화신'에 경악하고 있나요? 하하, 물론 저도 요즘은 어엿한 성인으로, 밤마다 착실히 이를 닦는 답니다.... 음...가끔, 술 마시고 들어와 바로 뻗을 때를 제외하곤 말이죠....그 외에도... 흠흠, 아니 '항상' 잘 닦고 있다구요! 그저 묻고 싶었던 거예요, 저와 같은 전철을 밟은 연약한 영혼이 또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손 맞잡고 서로 공감의 위로라도 나누고 싶어서....그 지난했던 마음고생을 모르는 사람들은.....
자, 이제 진정하고 마무리해야겠군요. 역시 건강을 위해, 자기 전에는 이를 닦는 것이 좋겠지요. 혹시 아직도 예전의 저처럼 그게 몸서리쳐지게 싫으신 분들은, 제가 가끔 떠올렸던 한 장면을 그려보시는 게 도움이 될 수도 있겠군요:
판사: "모모씨가 이적씨를 상대로 낸 이혼청구소송.
이혼사유는 남편 이적씨의 전근대적이고 야만적인 위생습관."
방청객들: (웅성웅성)
판사: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이적에게) 자기 전에 이를 닦지 않는다면서요?
이게... 사실입니까?"
이적: (침통하게 고개를 떨군다)
방청객들: "세상에, 어떻게...." "저 친구 그렇게 안 봤는데 말야, 의외로 난폭한 구석이 있구먼"
"부인이 불쌍해요...그 오랜 세월동안..."
모모씨(이적의 부인): (눈물을 쏟으며 퇴장)
어때요, 끔찍하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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