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leejuck.com
  지문사냥꾼 - ③
  지문사냥꾼 - ③


  지문강탈사건에 대한 소문은 차차 인근 지역으로 퍼져나갔다. 도시의
사령관은 일련의 사건들에 대한 모든 종류의 보도를 통제했지만, 사람들
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소문까지 막을 순 없었다. 흉흉한 이야기들
에 대한 반응은 각양각색이었다. 일부는 예전부터 떠도는 허황한 도시괴
담의 변종이라며 코웃음쳤고, 일부는 그러면서도 몰래몰래 자식들의 통
금시간을 앞당겼다. 지문사냥꾼의 이야기는 사람들의 상상력과 접붙어
점점 더 빠른 속도로 퍼져가고 있었다.  

  도시 외곽의 농촌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여교사 C 역시 처음엔
이 이야기를 단순한 흥밋거리로만 여겼다. 허나 어느 날 한 아이가 "그
럼 길을 가다 지문사냥꾼이랑 툭 부딪히면 지문이 다 사라지는 거예
요?" 라고 물으며 울음을 터뜨린 순간, 어린 시절의 어떤 기억이 마치 폭
발하듯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그녀와 어릴 적 한 마을에서 자라던 소년
L에 대한 기억이었다.

  그 마을은 수 백년 동안 금욕적인 종교규율을 지켜왔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을의 한 처녀가 임신을 한 것이 발각됐다. 마을은 발칵 뒤집혔고,
처녀의 부모는 성난 군중에게 처녀를 내주고 말았다. 군중은 처녀의 목
에 밧줄을 묶어 마을 입구 큰 나무 앞으로 끌고 갔다. 그곳에서 사제는
일장 설교를 퍼부었고, 사람들 모두 힘을 합해 밧줄을 나무 꼭대기에 걸
고 힘껏 당겼다. 처녀는 버둥거리며 나무 꼭대기로 끌려 올라갔다. 끔찍
한 발작 끝에 움직임이 멈췄고, 죽은 처녀는 크리스마스 트리의 별 장식
처럼 나무 꼭대기에 매달린 채로 몇 달 동안 방치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나무 앞을 지날 때마다 성호를 그으며 처녀의 죄악으로 자신들이 천벌
을 받지 않게 되기를 간절히 기원했다.

  놀라운 일은 그 후에 일어났다. 목숨을 잃고 매달린 상태에서도 처녀
의 배는 날마다 불러왔다. 워낙 높고 큰 나무라 사람들은 거기까지 신경
을 쓸 수 없었다. 수태로부터 아홉 달이 지난 어느 밤, 죽은 처녀의 다리
사이로 아기 하나가 빠져 나왔다. 마침 그 앞을 지나던 마부에 의하면,
아기는 자신의 이로 탯줄을 끊고 나무 꼭대기에서 땅으로 뚝 떨어졌다.
피범벅이 된 아기를 마부가 안아 집으로 데려갔고, 그 후 아기는 마부의
집에서 자라나게 되었다. 마부는 아기가 잔인하게 죽임을 당할까 두려
워 누구에게도 그 사실을 알리지 않다가, 죽기 직전 고해를 통해 사제에
게만 고백했다. 이미 아이가 열 살이 될 무렵이었으니, 마을 사람들도
그 아이를 불쌍히 여겨 거두어주리라 생각했던 것이리라. 허나 마부가
죽고 나서 아이는 마을의 천덕꾸러기가 되었다. 아이는 학교에서도 쫓겨
나 거리를 배회하며 사람들이 버린 음식 찌꺼기로나 연명하게 되었다.
구타와 조롱에 찌든 아이의 눈빛은 늘 증오로 희번덕거렸고, 사람들은
그 눈빛을 보고 "역시 사악한 씨는 달라도 달라" 라며 수근댔다. 결국
열여섯 살이 되던 어느 날 아이는 마을에서 완전히 종적을 감추고 만다.

  C의 머릿속을 강타한 소년 L에 대한 기억은 그가 마을을 떠나기 직전
의 일이다. 그 날도 마을 아이들은 거지같은 몰골의 소년 L을 둘러싼 채
돌을 던지며 놀려대고 있었다. "더러운 씨! 더러운 놈! 죄의 나무에서 떨
어진 놈!" 아이들은 노래를 부르며 마을 광장으로 L을 몰았고, 어른들은
여느 때처럼 누구도 그들을 제지하지 않았다. 마침내 소똥과 말똥이 가
득 쌓인 마차를 발견한 아이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L의 팔과 다리
를 들어 그를 똥 속으로 처넣었다. 소녀 C는 그때 멀리 숨어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C는 한때 L과 절친한 사이였지만, L의 비밀이 밝혀진
뒤로는 부모의 뜻대로 L과 단 한마디도 나누지 못하고 있었다.  핍박받
는 L을 위해 아무 것도 해줄 수 없다는 사실에 C는 눈물만 삼킬 뿐이었
다. 헌데 바로 그때,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똥으로 뒤범벅된 L이 갑자기
귀를 찢을 듯한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고, 그와 동시에 그의 몸에서 뭔가
알 수 없는 빛이 흘러나왔다. L은 아이들에게로 뛰어들어 그들의 목을
조르고 손목을 비틀었다. 한바탕 광란이 마을 광장을 휩쓸었다. 곧바로
어른들이 달려와 L을 아이들에게서 떼어냈고, L은 거의 죽기 직전까지
어른들에게 두들겨 맞아야 했다. 어른들과 아이들이 모두 떠난 뒤, 똥과
피로 뒤덮인 L은 광장 바닥에 버려진 채 엎드려 키득거렸다. C는 그때까
지도 멀찍이 몸을 숨긴 채 울먹이기만 했다.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아
무 것도 없는 것 같았다.

  다음 날 L은 마을에서 사라졌고, C는 이상한 일을 발견했다. 그녀의 왼
손 손금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다. 학교에 가자 어제 마을 광장에 있
었던 아이들 모두에게서 이상이 발견됐다. 어떤 아이는 두 눈 속의 검은
자가 사라졌고, 어떤 아이는 배꼽을 잃었다. 어떤 아이는 웃는 법을 완전
히 잊었고, 어떤 아이는 아예 그 때까지의 모든 기억을 상실했다. 교사
와 부모들은 이 무서운 상황에 대해 어찌할 바를 모르고 경악했다. 그 후
로 사람들은 소년 L과 그의 출생, 그리고 마을 광장 일 모두에 대해서 침
묵하기로 했다. 그 무거운 침묵은 지금까지 한번도 깨진 적이 없었다. C
는 완전히 잊고 있던 이 모든 일을 생각해내고는 조심스레 왼손을 펼쳐
보았다. 손바닥은 마치 물고기처럼 매끈했다. C는 자신의 왼손을 바라보
며 이렇게 되뇌었다. "내가 가서 그를 만나야 해."



(계속)





지문사냥꾼 - ③    2004/09/22 4341
233 활자를 먹는 그림책    2004/09/11 7129
232 독서삼매(讀書三昧)    2004/09/06 7843
231 외계령(外界靈)    2004/09/02 6058
230 지나보다 했더니    2004/08/17 7898
229 인생은 실수의 연속    2004/08/13 9786
228 이기나보다 했더니    2004/08/11 7416
227 [내낡서바] 환풍기    2004/08/09 6605
226 [내낡서바] 희망의 마지막 조각    2004/08/09 6056
225 잃어버린 우산들의 도시 - ③ [結]    2004/08/09 3950
224 잃어버린 우산들의 도시 - ②    2004/07/28 4420
223 잃어버린 우산들의 도시 - ①    2004/07/27 5378
222 [내낡서바] 우리는 터널 속으로 들어간다    2004/07/21 6339
221 지문사냥꾼 - ②    2004/07/20 5539
220 덥군요    2004/07/20 5962
  
   [1]..[11][12][13][14][15] 16 [17][18][19][20]..[31]
Copyright 1999-2020 Zeroboard / skin by AMI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