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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낡서바] 희망의 마지막 조각
희망의 마지막 조각


외투를 걸친 채 현관으로 들어서 곧바로 소파 위에 쓰러진 나는
잠시의 피곤함을 거두고 다시 눈을 떴다.
아니 그것은 차라리 이렇게 습기 찬 오후 그녀의 아파트 부엌이었던 것 같은데
의자 위에 걸쳐진 내 어깨 그 위에 매달린 머리가
식탁 위의 흰 접시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곳에 희망의 마지막 조각이 있었다.
붉은 양념소스가 말라비틀어지고
이미 씹기도 고될 만큼 굳어져 있는
희망의 마지막 조각이 남겨져 있었다.
나는 한 손으로 왼쪽 얼굴을 비벼대며
아마 킬킬거렸던 것 같다. 오히려
두 마리의 파리가 접시의 주위를 날며 붕붕 소리를 내고 있었다.
늦은 오후 붉은 빛이 두터운 커튼을 못 이긴 채 밖에서 머물고 있어
난 한 팔로 그 장막을 거뒀다. 도시. 그리고 건물들. 나의 좌절이
눈의 안쪽에서 한꺼번에 쏟아져 내렸고 나는 다시 침몰했다.
다시 눈을 떴을 때 희망의 마지막 조각은 여전히 내 눈앞에 놓여 있었으나
전보다 훨씬 뒤틀려 더러운 꼴로
대여섯 마리의 파리 떼에 덮여 있었다.
나는 구토를 참으며 낡은 신문으로 파리를 쫓고 접시 위의 조각을
집어들려 했다. 그러나 순간 몸의 중심을 잃고,
하마터면 20층 아래 보도블럭으로 떨어질 뻔했다.
세찬 바람이 부는 불꺼진 옥상 난간 끄트머리에
간신히 두 발과 한 팔을 의지한 채 도시를 바라보았다.
난 노래하기 시작했다. 성대가 찢어지는 듯한 소리로
건물의 푸른 창에 노래가 부딪히는 걸 느끼며.
노래는 울려퍼져 도시를 날아다니며 골목들과 교차로를 가로지르고
작은 집과 창고의 벽과 창문들을 두드리다 마침내
곤히 잠들어 있던 서늘한 아침
나의 침대 베개 맡에 도달했다. 영문도 모르고 잠을 깬 나는
일어나 잠시 멍하게 앉아 찝찔한 입안을 혀로 닦다가
나른한 눈으로 주위를 살피고는
이제는 심한 냄새를 풍기며 탁자 위에 놓여 있는
오래된 희망의 마지막 조각을
주저하지 않고 쓰레기통에 버려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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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도 찾았어요. 친구가 보내준 제 글 더미에서.
94년 쯤일 것 같네요. 노래 <희망의 마지막 조각>의 원안.
이로부터 4년 뒤에 패닉 3집에서 노래로 만들어지는.
옛 글을 뒤적이는 감회가 새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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