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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잃어버린 우산들의 도시 - ③ [結]
잃어버린 우산들의 도시 - ③


  그때 지하철이 서서히 지상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다리를 건너는 것이
었다. 빗줄기가 세차게 강물 위로 떨어지는 게 창 너머로 뿌옇게 보였
다. 소나기다. 오늘 하루 종일 오락가락하는 비. 아까 지하철을 탈 때만
해도 비는 내리지 않았다. 갑자기 궁금한 것이 떠올랐다.
  "근데 말야, 그 도시에는 어떤 비가 내리지? 아니, 늘 비가 오겠지?"
  "비? 비 따위는 오지 않아." 푸른 우산은 단호하게 말했다.
  "비가 오지 않는다고? 이봐, 우산들의 도시에 비가 오지 않는다니?"
  "우리 모든 우산들의 삶이 고단해진 원인이 뭔지 아나? 바로 비야. 그
놈의 지긋지긋한 비 때문에 우린 펴지고 적셔지고 구겨지고 녹슬게 되
지. 우리의 낙원에 그런 고통 같은 건 존재해선 안 돼. 아무렴. 우리가 그
빛나는 도시에 가서까지 비를 맞으며 고행해야겠나? 누구를 위해서? 자
네 같은 인간들을 위해서? 왜? 그곳엔 인간은 존재하지도 않는걸? 온전
히 우산만을 위한 세상이란 말이야. 믿어지나? 내가 그 곳으로 간다는
게? 하하하하, 하하하하하."
  "하지만," 난 무언가를 이야기하려다 입을 닫았다. 우산은 애초에 사람
들이 비를 막으려고 만든 것이고, 따라서 비는 우산의 존재의 이유이자
조건이라는 말을 하고 싶었으나, 그런 얘기를 꺼냈다간 푸른 우산의 이
들뜬 기분을 무례하게 해칠 것 같았고, 결정적으로 환승역에서 갑자기
많은 사람들이 차내로 밀려 들어와, 푸른 우산과 나 사이를 메워 버렸기
때문이었다.  
  난 다시 앞을 바라보며 잃어버린 우산들의 도시의 모습에 대해 상상했
다. 우산들이 줄을 지어 빙글빙글 도는, 오래된 헐리우드 뮤지컬영화의
한 장면만이 계속해서 떠올랐다. 그 외엔, 도대체 이 우산들이 어떻게 살
고, 사랑하고, 즐기고, 꿈꾸는지 그려보려 해봤자 아무런 그림이 떠오르
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 아련한 생각의 구름 속에 잠겨있던 중, 누군가
날 흔들며 말했다.
  "일어나요 아저씨, 종점이에요. 내려요."
  눈앞이 흐릿했다. 깜빡 잠이 들었었나 보다. 점점 선명해지는 시야엔 한
심하다는 듯 나를 바라보는 초록색 옷의 공익근무요원이 보였다. 난 황
급히 입가의 침을 닦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미 모든 사람들이 내리고,
객차는 불도 반쯤 꺼진 상태로 멈춰 있었다. 난 공익근무요원에게 고개
를 꾸벅이고 일어나 차문을 나서려했다. 그때, 공익요원이 나를 불러 세
웠다.
  "아저씨, 우산 가져 가야죠!"
  돌아보니 푸른 우산이 그 손에 들려 있었다. 나는 머뭇거리다 대답했다.
  "그거, 내 꺼 아니에요."
  "그래도 갖고 내려요. 밖에 비 많이 와요."
  순간 수천 개의 생각이 고속열차처럼 머리 속을 빠르게 지나갔다. "아
니에요. 그 우산, 따로 갈 데가 있어요."
  공익근무요원은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갸웃거리다, 알아서 하라는
듯 푸른 우산을 들고 다음 객차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 난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와 우산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내가 잘못 본 것이 아니라면,
그 때 그 우산은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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