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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잃어버린 우산들의 도시 - ②
잃어버린 우산들의 도시 - ②


  허나 내 쪽에서 먼저 몸이 달아 질문을 퍼붓다간 콧대높은 우산이 빙
빙 돌리는 말놀음에 농락 당하기 십상이다. 나는 짐짓 심드렁한 척 되물
었다.
  "잃어버린 우산들의, 도시라? 그런 건, 금시초문인걸?"
  그러나 푸른 우산은 내 말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날개를 펄럭거리며
중얼거렸다.
  "결국, 마침내, 이 날이 올 줄 알았지. 오늘 아침, 출근하던 나의 네 번
째 주인이 나를 집어들었을 때 말야, 그것도 먼저 집밖으로 뛰어나갔다
가 황급히 다시 돌아와 우산통 속의 여러 녀석들 중에 하필이면 나를 집
어들었을 때 말야, 나는 결국 그 날이 도래하고야 만 것이란 걸 직감했
어"
  이미 푸른 우산은 자신의 이야기에 도취되어 나의 반응 따위는 안중에
도 없었다. 호오. 그렇다면 이야기를 캐내기는 한결 쉬워진 셈이다. 이건
정말 뜻밖의 횡재인 걸.  난 다시 한 번 조금 큰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니까, 그 잃어버린 우산들의, 도시란 게, 뭔데?"
  우산은 순간 불쾌한 듯 멈칫했다가 '이 마당에 용서 못할 게 무어란 말
인가' 라는 선택받은 자의 아량을 담아, 친절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우리 우산들은 컨베이어 벨트에서 앙상한 뼈대가 조립될 무렵부터
그 도시 이야기를 하지. 그 도시는, 말하자면 말야, 모든 우산들이 궁극적
으로 도달하려하는, 뭐랄까, 꿈의 도시라 할 수 있어. 어떤 우산은 공장에
서 나온 지 하루만에 그곳으로 직행하는 기적을 겪기도 하지만, 어떤 우
산은 수십 년이 걸리기도 하지. 물론 그것도 영영 그곳에 도달하지 못한
채 찢기고 짓이겨져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대부분의 평범한 우산에 비하
면 엄청난 행운이지만 말야.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산전수전을 다 겪은 낡은 우산이, 우여곡
절 끝에 비틀거리며 그 도시의 입구에 들어설 때면 수천만 개의 우산들
이 동시에 날개를 펴고 하늘로 날아올라 빙글빙글 도는 춤을 추며 그 영
웅을 환영한다네. 대낮에도 그 수많은 우산들 때문에 도시 전체가 검어
질 정도라니 말 다했지 뭐야. 우산들은 극진한 정성으로 낡은 우산을 씻
기고 고쳐, 몇 시간만에 젊고 싱싱한 새 우산으로 다시 태어나게 해준다
는 거야. 그리고 짐작하겠지만 모두 그 곳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되
는 거지."
  말하는 도중에 푸른 우산은 갑자기 뛰어올라 날개를 활짝 펴고 빙글
한 바퀴 도는 시범을 보여주기까지 했다. 나는 나도 모르게 그 멋진 퍼포
먼스에 감격해 손뼉을 치다, 주위를 둘러보곤 겸연쩍어 두 손을 허리춤
에 감췄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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