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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낡서바] 우리는 터널 속으로 들어간다
  우리는 터널 속으로 들어간다. 길고 굽이진 철길을 따라 찌르는 햇살
등에 지고 여기까지 온 우리. 이제 여기 벌린 커다란 목구멍 속으로 한
걸음 내딛는다.

  터널은 빛의 줄기이며 어둠의 줄기. 문득 서늘한 이슬에 어깨를 움추리
고 팔뚝에 식은땀을 닦고서, 천장에 맺힌 백열등의 빛을 별자리삼아 걷는
다. 깊이깊이 걸을수록 불빛은 희미해지고, 빛과 어둠이 서로 섞이다, 마
침내 어둠이 이기고 만다.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우리가 얼마나
걸었는지를 셈한다.

  멀리서 철길이 우는 소리. 어둠으로 막힌 터널 속으로 용감한 열차가
뛰어든다. 열차는 괴성을 지르며 등장하여 어둠을 잔인하게 찢으며 사라
져간다. 빛과 속도가 흩어 놓은 터널의 어둠은 그래도 이내 제 모습을 찾
는다. 열차는 창문에 짓눌린 수많은 아이들의 얼굴을 던져놓고 갔다.

  우리는 터널 속을 걷고 있다. 서로의 발소리로 서로를 확인하며 좁아져
가는 듯한 터널을 걷는다. 이제 반절쯤 왔을까. 누구도 이런 기대를 함부
로 내뱉지 못한다. 아무말없이 벽을 더듬으며, 피어나는 빛의 기미라도 찾
으려 먼 곳을 응시한다. 이미 원근이 사라진 어둠만이 존재할 뿐이지만.

  우리는 열차가 사라져간 저편을 꿈꾸며 걷는다. 터널이 끝나는 곳, 밝은
빛으로 나아가 사람들이 오르내리는 작은 시골역까지. 그 어디로 가기 위
해 우린 이젠 보이지 않는 철길을 따라 걷고 있다. 무거운 어둠을 비집으
며 음습한 바람을 뿌리치며, 어디까지 계속될지 모르는 터널을 걷는다. 달
려간 열차의 기억을 안고.



                                       李東俊 1993년 6월 12일에
                                         연극모임 글쓰기: 습작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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