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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문사냥꾼 - ②
지문사냥꾼 - ②


  그날 밤 짙은 안개가 도시를 뒤덮었다. 인적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거
리의 공허를 메우기라도 하려는 듯 안개는 한치 앞을 알아볼 수 없을 정
도로 두텁게 골목골목으로 스며들었다. 그때 한 그림자가 주택가의 담벼
락을 따라 재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림자는 다람쥐처럼 날렵한 몸짓
으로 어느 건물까지 다다르더니 반지하 주택의 작은 창문을 뜯어내고 순
식간에 그 속으로 사라졌다.

  빈집털이 J는 빈집이라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안심한 듯 긴 한숨을 토해
내더니 온몸을 감싸고 있었던 망토를 벗어 던졌다. 두어 번 머리를 휘젓
고 나니 길고 검은 생머리가 어깨까지 흘러내렸다. 열여섯 소녀 J는 여덟
살 때부터 좀도둑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도둑질을 배웠다. 아버지는 젊은
시절 솜씨가 좋기로 유명했다지만 J가 열 살 되던 해 무렵부터 전에 안
하던 실수를 되풀이하기 시작했다. 훔친 물건을 어딘가에 묻어두고는 어
디 묻었는지 완전히 잊어버린다든지, 한 번 털었던 집을 그 다음날 털러
다시 찾아간다든지 하는 어처구니없는 실수들이었다. J는 그 모든 게 아
버지가 언젠가부터 탐닉하는 정체 모를 약물 때문이라고 생각했지만, 미
처 말리기도 전에 아버지는 한 장관의 저택 정원 한 가운데서 굶주린 세
퍼트들에게 물어뜯기며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그 저택 역시 바로 전날
그가 몰래 침입했다가 기적적으로 빠져 나오는데 성공한 집이었다. J의
만류를 뿌리치고 그 저택에 다시 잠입하려는 아버지를 보며, J는 처음으
로 이것이 단순한 약물의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떠올리게 되
었지만, 눈앞에서 개들에게 물어뜯기며 비명을 지르는 그의 모습을 목격
하곤 아버지에 대해 생각하기를 영원히 멈춰버리고 말았다. 그날 이후 J
는 혼자서 일하기 시작했고, 곧 아버지보다 더 뛰어난 빈집털이로 자라나
게 되었다.

  석 달 전부터 사람들이 지문을 잃고 어딘가로 끌려가는 일들이 벌어지
기 시작했을 때, J는 본능적으로 이게 기막힌 기회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녀는 굳게 닫힌 창문을 통해 비치는 불빛과 그림자의 형태만으로도 그
것이 빈집인지 아닌지 바로 알아낼 수 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밤이면 집
안에 틀어박힌다는 것은, 거꾸로 말하자면 어디론가 끌려간 사람들이 살
던 빈집들은 마치 빠진 이처럼 분명하게 눈에 들어온다는 것을 의미했다.
갑자기 들이닥칠 집주인을 걱정하며 행동을 서두를 이유도 없었다. 단지
사건 발생 3일 후 아침 9시에야 압류 딱지를 들고 찾아올 일군의 군인과
공무원들과 마주치지만 않으면 완전히 안전한 것이다. 새벽녘 여유롭게
작업을 마치고 거리로 나와도 아무도 없었다. J는 저승의 아버지가 선물
한 것 같은 이 호황을 만끽하며 매일 밤 빈집들을 돌아다녔다. 알토란같
은 귀금속이나 현금은 그녀가 다 챙겨가고, 관련서류를 작성하느라 3일을
허비한 공무원들은 영문도 모른 채 낡아빠진 가구나 떠안게 된다는 사실
이 J의 마음을 더욱 통쾌하게 했다. 오늘도 J는 집안의 값나가는 물건을
모두 가방에 담고 희뿌옇게 밝아오는 창 밖을 흘끗 보고는 서둘러 몸을
움직였다. 창문으로 나오려 의자에 발을 디뎠을 때 오래된 나무책상 위에
놓여있는 자그마한 액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젊은 부모와 어린 아들
둘이 찍힌 가족사진이었다. 이들은 지금쯤 어디로 끌려갔을까. 잠시 멍하
니 사진을 바라보던 J는 그러나 곧 머리를 질끈 동여매고 망토를 뒤집어
쓴 채 아직도 안개가 짙게 깔린 거리로 뛰어나오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져버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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